[517] 제42장. 적천수/ 17.만물(萬物)을 관장(管掌)하는 존재

작성일
2024-05-05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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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42. 적천수(滴天髓)

 

17. 만물(萬物)을 관장(管掌)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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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점심을 먹고서 백발(百發)과 유하(遊霞)를 데리고 한산사의 지객화상을 찾았다.

나무아미타불! 어쩐 일이시오?”

며칠 전에 만났는데 또 찾아온 우창 일행을 보고서 반가워하며 말했다. 지객화상을 보자 우창도 그 결과가 궁금해서 넌지시 물었다.

, 주지 대사의 심사(心事)는 편안하신지요?”

아직은 결말을 보지 못했소이다. 그러나 잘될 것으로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싶구려. 허허허~!”

다행입니다. 하하하~!”

그런데 무슨 일로? 그냥 들린 것 같지는 않고.....”

, 실은 의논을 할 일이 생겨서 찾아뵈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말해 보시구려.”

지객화상은 우창이 말하는 연극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곧바로 주지화상을 찾아가서 그 뜻을 전하고는 두말을 할 것 없이 흔쾌히 승락(承諾)하면서 나한전(羅漢殿)의 후원(後園)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리고 공연은 언제든지 밤늦은 시간만 아니면 좋다고 하자 유하도 만족한 결과에 흡족했다. 돌아오는 길에 유하가 말했다.

스승님께 자연의 이치를 배우면서 연극은 쓸모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가르침을 받으면서 생각해 보니까 유하도 누군가에게 자연의 이치를 연극으로 가르쳐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무슨 방법이 있을까를 생각해 봤는데 오늘 마침 마음에 품었던 것을 말씀드렸는데 이렇게 멋진 결실이 되었어요. 앞으로 스승님께서 써 주시는 대본(臺本)을 갖고서 재미와 깨달음을 같이 전할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르치는 방법 중에 방편(方便)’이라는 말이 있지. 무엇이든 전달하기 위해서는 방편을 이용하는데 방편이라도 선교방편(善巧方便)이 있단 말이네. 이것은 좋은 방향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 쓰는 방편인데, 반대로 악용(惡用)이 되는 방편이라면 사술(邪術)이나 사기(詐欺)라고 할 것이네. 하하하~!”

우창도 새로운 일이 생긴 것에 대해서 약간은 설레기도 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백발이 작별했다.

스승님, 내일 뵙겠습니다.”

두 사람과 헤어져서 서재로 돌아온 우창은 오늘 공부한 정화(丁火)편에 대해서 곱씹으며 정리를 했다. 현담의 교수법(敎授法)은 참으로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의 가슴 속에서 자라고 있던 사유의 결실을 모두 꺼내놓고 제자들과 같이 나누는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특히 백발의 말에서는 전혀 엉뚱한 이치를 발견했으니 참으로 중요한 것을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가 설명해도 그 안에서는 우창이 생각지 못한 이치가 또 난데없이 튀어나오기도 하는 것은, 흡사 계곡에서 사금(砂金)을 줍는 것보다도 짜릿했다.

 

다음날 사시(巳時).

날이 갈수록 대중의 열정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제자들은 누구에게 현담의 눈길이 머물게 될지를 모르는 상황을 깨닫고 나서는 더욱 열심히 예습(豫習)에 열을 올렸다. 갑자기 주어지는 발표의 기회를 멋지게 풀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현담이 말을 꺼냈다.

오늘은 무엇을 배울 차례던고?”

그러자 염재가 일어나서 대답했다.

! 태사님, 오늘은 무토(戊土)를 배울 순서입니다.”

그렇군. 오늘은 그대가 읽어보겠는가?”

현담의 눈길이 멈춘 곳은 임천(林泉)이었다. 평소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을 정도로 조용했는데 현담이 가리키는 것을 보고야 우창도 문득 눈에 보였다. 처음에 군엄(君嚴)이 원춘(元春)과 임천을 데리고 함께 찾아왔던 장면이 떠올라서 미소를 지었다.

! 태사님, 제자는 임천(林泉)입니다.”

임천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책을 들고는 그렇지 않아도 걸걸한 음성으로 크게 소리를 내어서 읽었다.

 

무토고중 기중차정(戊土固重 既中且正)

정흡동벽 만물사명(靜翕動闢 萬物司命)

수윤물생 화조물병(水潤物生 火燥物病)

약재간곤 파충의정(若在艮坤 怕衝宜靜)

 

임천은 무토편의 원문(原文)을 다 읽고서는 합장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현담이 이번에는 자원(慈園)에게 말했다.

어디 앞의 두 구절을 자원이 풀이해 보게.”

우창은 현담이 자원에게 풀이하라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된다는 것으로 가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제자들에 대한 기억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서 내심 놀랐다. 이렇게 일일이 각자의 깨달음에 대한 수준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있는 능력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은 현담이 보는 것은 공부의 깊이가 아니라 눈빛이었다는 것을 우창은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현담의 말에 기뻐한 자원이 일어나서 생각했던 것을 풀이했다.

! 자원이에요. 첫 구절은 무토고중(戊土固重)’인데, ()는 양토(陽土)이고 그 특성(特性)은 고중(固重)에 있습니다. ()는 견고(堅固)하고, ()은 무겁다는 뜻이에요. ()는 기()를 지키고 보호하는 호법신(護法神)과 같아서 견고하게 지상(地上)의 모든 생명체(生命體)를 지키는 존재인 까닭입니다. 가령 팔괘(八卦)에서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乾卦)가 오행(五行)으로는 양금(陽金)이라고 했으나 천간론(天干論)에서 본다면 무토(戊土)가 맞습니다. 천간(天干)에서는 무()가 하늘이니까요. 경방(京房)이 팔괘에 오행을 배속시키면서 무엇을 기준으로 삼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천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 또한 오류(誤謬)라고 할 수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원이 또랑또랑한 음성으로 천천히 말했다. 제자들은 집중해야만 무슨 말인지를 이해할 정도로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심오(深奧)하게 들렸다.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담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마치 처음 듣는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가? 무토(戊土)는 태산(泰山)이 아니던가?”

아니에요. 태산이 어찌 무토가 될 수 있겠어요. 그것도 단지 하늘 아래에 있는, 그러니까 무토 아래에 있는 기토(己土)일 뿐이죠.”

자원이 단호하게 말하자 현담이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그런 이야기는 어떻게 배웠는가? 오늘은 내가 한 가르침을 받아야 할 날이로구나. 허허허~!”

현담의 말로 봐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자 자원도 기쁜 표정으로 현담에게 말했다.

어머! 정말이세요? 태사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더욱 조심스러워져요. 그래도 자원이 이해하고 있는 데까지는 말씀을 드려 보겠어요.”

그래 알았으니 어서 말해 보게.”

()는 창을 의미하는 과()와 칼을 의미하는 삐침별(丿)로 이뤄진 글자예요. 그러니까 무를 분해하면 과()는 창이고, (丿)은 칼이죠. 생긴 것을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해요. 이 두 개의 글자 조합은 지키고 공격한다는 의미가 되거든요. 창은 지키는 것이고, 칼은 공격하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허공의 외부(外部)에서 적()이 침입하면 이 땅의 생명체를 지키려는 것이죠. 이때는 방어를 하는 창이 그 기능을 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미 침입해서 생명체들에게 해코지하고 있을 적에는 공격적인 칼로 처단(處斷)을 하게 되죠. 이것은 지상(地上)에서도 이뤄지고 체외(體外)에서도 이뤄지는 자연의 방어(防禦)라고 하겠어요.”

현담은 자원의 몇 마디 말에 이미 몰입해서 한편으로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의미를 생각하느라고 무아지경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현담이 물었다.

참으로 놀랍군. 지상에서는 어떻게 생명체를 지킨단 말인가.”

생명체를 지키는 것을 생각하려면 그 이치는 인간을 지키는 것과도 같아요. 가령 여러 이유로 외상(外傷)을 입게 되면 출혈(出血)을 막기 위해서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응고(凝固)시켜서 부위를 막아요. 이것은 몸에 있는 무토가 저절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무계합(戊癸合)의 이치는 여기에서도 작용해요. 계수(癸水)인 피와 무토(戊土)인 방어력이 합을 해야만 상처에 딱지를 만들게 되거든요. 만약에 무()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흘러서 결국은 생명을 유지(維持)할 수가 없게 되니 이것은 무토(戊土)가 단단하여 상처를 막아주기 때문이라고 하겠어요.”

자원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던 현담도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되지 않는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것을 본 자원이 다시 설명했다.

()는 겉을 감싸고 있는 큰 입구()가 있고, 그 속에 다시 고()가 있는데 고()는 도()와 입구()로 되어 있어요. 밖을 감싸는 구()는 몸을 지켜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안의 구는 생명을 이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그 안의 도()는 자연의 이치겠네요. ‘무토(戊土)는 고()하다는 이치가 이와 같아서 만물은 무토가 없이는 생존할 수가 없다는 의미가 되죠. 그것도 오랜 시간을 매우 견고하게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라고 하겠어요.”

오호! 참으로 신기하고도 오묘하군. 그래서?”

이렇게 되는 까닭에 무()는 하늘이에요. ‘하늘이 무겁다고 하는 것은 무게를 갖고 있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마치 허공에 콩을 뿌리면 그 콩은 무게로 인해서 땅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과 같아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담이 이번에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또 무슨 의미인가? 원래 콩이 무거워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지 않은가? 오히려 산이 커서 무겁다고 하는 편이 더 이해하기에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드는데, 자원이 하는 말은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걸. 좀 쉽게 설명할 수도 있겠나?”

그것이 무토(戊土)의 신비(神秘)한 능력이에요. 그래서 십성(十星)으로는 편인(偏印)을 배속(配屬)하는 것이죠. 편인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고 현묘(玄妙)하여 오감(五感)으로는 전혀 알 수가 없으나 의연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기에 보통 신령(神靈)이라고도 하고 수호신(守護神)이라고도 해요. 만약에 무()가 무겁게 눌러주지 않는다면 인간이 허공으로 둥둥 떠다닐 수도 있고 영원히 땅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 신령(神靈)이라고 하니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는군. 신령은 체감(體感)할 수가 없지만 무소부재(無所不在)한 존재이니까. 그런데 무토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듣고 보니까 도대체 이러한 지혜를 어디에서 배웠는지가 궁금하군. 어느 고인이 그와 같은 깊은 이치를 가르쳐 줬단 말인가?”

, 제게 가르쳐 주신 스승님은 우창 스승님과 고월 스승님이세요. 그렇지만 이러한 이치를 두 스승님께 가르쳐 주신 고인(高人)은 하충(何忠)이라고 하는 분이 써놓은 심리추명(心理推命)이라는 책이었어요.”

현담은 자원의 말을 듣고서 조용히 기억하려고 중얼거렸다.

하충..... 하충.... 심리추명.... , 들어본 적이 없는걸. ()에서 신()을 발견했다니 참으로 경이(驚異)로운 안목을 가졌던 분이로군.”

아마도 경도처럼 이름도 없이 연구하셨던 고인인가 봐요. 뿐만이 아니었어요. 우주(宇宙)도 고중(固重)한 무토(戊土)의 거대한 힘으로 통제(統制)되고 있으므로 천상계(天上界)에도 그 영향력을 지대(至大)하게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래서 일월성신(日月星辰)이 제 자리에서 운행(運行)하게 되므로 오성(五星)이 제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고 했어요.”

아니, 오성이라면 목성(木星)인 세성(歲星), 화성(火星)인 형혹성(熒惑星), 금성(金星)인 태백성(太白星), 수성(水星)인 진성(辰星), 토성(土星)인 진성(鎭星)을 말하는가? 그것조차도 무()가 관리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요.”

자원의 말을 듣고서 오히려 우창이 내심 놀랐다. 하충 스승의 가르침에는 그러한 이야기까지는 없었는데 어디에서 배워와서는 이렇게 꿰어맞추고 있는 것인지 다음에 물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은 가만히 이야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는 지상(地上)의 존재이기도 할 뿐 아니라 우주를 관장(管掌)하는 창조주(創造主)라는 말이지 않은가? 아무리 내가 견문이 좀 있다고는 생각했으나 고중(固重)의 두 글자에 이러한 의미가 깃들어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네. 과연 후생가외(後生可畏)이고 교학상장(敎學相長)이로군, 참으로 놀라워. 허허허~!”

현담은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얻은 소년처럼 신기해하면서도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자 자원도 신이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태사님께서 즐거워하시니 자원도 기뻐요. 호호~! 더 설명을 한다면, 무토의 역할은 그것만이 아니라 해와 달도 제멋대로 도망을 가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있어요. 그래서 일정하게 일출(日出)과 일몰(日沒)을 반복하면서 태양은 24절기(節氣)를 순환(循環)하고 달은 29일과 절반(折半)을 순행(順行)하는 것이죠. 그래서 한 달은 29일이 되면 다음 달은 30일로 삼아서 기록하는 것이잖아요. 이것은 흡사 얼음 속에 갇혀 있는 것과도 같아요. 이렇게 무거워서 일월도 마음대로 도망을 가지 못하므로 고중(固重)이라고 한답니다.”

아니,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의 연속이로군, 그러니까 무토(戊土)는 고산(高山)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우주를 관리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것이네. 이렇게 되면 그다음의 구절(句節)들도 모두 다시 해석해야만 하겠는걸. 자원의 깊은 통찰에 나도 감탄했네.”

현담의 말에 자원도 미소를 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원래 역경(易經)에서 건괘(乾卦)는 부친(父親)이잖아요? 마찬가지로 무토(戊土)도 부친이에요. 부친으로 풀이하면 고()는 완고(頑固)함이고 중()은 엄중(嚴重)함이죠. 부친의 완고함은 자연의 원칙(原則)에 따라서 자녀에 속하는 목화금수(木火金水)를 외호(外護)하기 때문입니다. 지상(地上)의 모든 생명체가 저마다의 행로를 운행하는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돌보는 일이기에 항상 긴장하고 무슨 일이라도 발생해서 자녀들에게 위해(危害)를 가하는 것이 없는지를 살피느라고 여념이 없어요.”

그러니까 자원의 말뜻을 본다면 자녀가 목화금수인가? 인간이 아니라 물질로 본다면 어떤 존재라고 할 수가 있을지 궁금하군.”

간단합니다. 모친(母親)의 역할을 맡은 기토(己土)가 품고 있는 모든 생명을 관장(管掌)하는 것이니까요. 지상에서 금()에 속하는 암석(巖石)이나 수()에 속하는 강해(江海)는 물론이고, ()에 속하는 동식물(動植物)이며, ()에 속하는 대지(大地)의 온기(溫氣)들을 잘 조절해서 만물을 지켜주는 것이 부친의 본질이니까요. 이것이 모두 무토고중(戊土固重)’의 네 글자에 들어있는 뜻으로 해석했어요.”

자원의 사유는 깊고도 그윽했다. 그리고 천지인(天地人)의 모든 관점에서 두루 막힘이 없이 파고들어서 풀이하자 현담도 크게 만족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깨달았단 말인가? 과연 탁월한 자원이로군. 어서 다음 구절도 풀이해 보게. 허허허~!”

현담은 다음 구절이 궁금하다는 듯이 재촉했다. 그러자 자원도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풀이를 이어갔다.

다음에는 기중차정(旣中且正)’이에요. 이것은 앞의 고중(固重)을 더욱 확고하게 다지는 뜻임을 알게 되었어요. 기중(旣中)이야말로 확신(確信)하고 믿으라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이미 중심(中心)을 얻었다는 말은 고중(固重)이 이뤄졌다는 의미죠. 그런데 중심(中心)이 뭘까요? 그 중심은 대지(大地). 부친의 역할을 충실(充實)하게 수행하는 것이 기중(旣中)’인데, ‘차정(且正)’또 중립(中立)과 중심(中心)을 지키면서 항상 바르게 수행(隨行)한다는 의미입니다. 목화금수(木火金水)가 때로는 치우치기도 하여 물이 범람(泛濫)하거나 폭염(暴炎)으로 가뭄이 지속되더라도 무토는 그러한 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맡은 책임을 완수하는 것을 뜻한다고 이해했어요. 여기에서 중요한 뜻을 갖는 글자는 중정(中正)’이죠. ‘무토(戊土)는 중정(中正)이다.’라는 말로 대신할 수도 있어요. ()에는 만물을 바르게 한다는 의미도 있어서 집을 지어도 무토의 뜻을 따라서 바르게 하려고 수직(垂直)의 추를 의지해서 기둥을 세우고 용마루를 얹어야 해요. 사람이 길을 걸어도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면 즉시로 바로 세워요. 자신의 자세가 잘못된 줄을 깨닫도록 무거운 힘으로 눌러버리니까요. 그러면 중심을 잃게 되므로 다시 바로 돌아와서 반듯하게 되니까요.”

오호! 그런가? 그것이 무토의 작용이었단 말이지?”

맞아요. 그 모두는 무토가 맡은 일이죠. 나무는 또 어떻겠어요? 기울어지면 살아갈 수가 없기에 중앙(中央)으로 꼿꼿하게 서서 자라잖아요. 이것도 무토(戊土)의 뜻에 따르는 까닭이에요. 바르게 서지 않으면 중력(重力)으로 눌러버려서 결국은 일어나게 만드니까요. 가령 태풍으로 나무가 기울어져서 둥치는 일어날 수가 없더라도 새롭게 돋아나는 가지는 의연(依然)히 하늘을 향해서 솟아오르잖아요. 이러한 것을 지켜보면서 무토(戊土)의 기운(氣運)이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 중정(中正)의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자원의 말에 현담은 거듭 감탄을 했다.

오늘은 내가 자원의 제자로군. 이렇게 기쁠 수가 또 있을까. 허허허~!”

태사님의 과찬이에요. 호호~!”

그러니까 곧게 서서 걷는 것은 무()의 작용이란 말이지? 그런데 나이가 들면 왜 곧게 서지 못하고 자꾸만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인가? 그 생명은 무슨 까닭인지도 설명할 수가 있나?”

나이가 든다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세가 나빠지거나 일을 많이 해서 허리의 뼈가 닳게 되면 중압감(重壓感)을 견딜 수가 없어서 자꾸만 기울어지게 되는 거죠. 이것은 반드시 늙은 사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집도 마찬가지니까요. 집이 처음에는 반듯하게 지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기둥이 썩게 되면 자꾸만 기울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서 무토(戊土)의 통제를 받지 못하게 되므로 오래지 않아서 더 버티지 못하고는 쓰러져서 땅으로 돌아갈 것임을 알 수가 있게 되죠. 그것도 또한 무토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나 집이나 모든 사물조차도 중정(中正)을 벗어나면 하늘의 영향을 받지 못하므로 땅으로 돌아가서 기토(己土)와 하나가 되는 것이니 그것을 동물에게는 죽음이라고 하고 무정물(無情物)에게는 허물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허리가 자꾸만 구부러지면 땅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셈이로구나. 그것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방법은 있습니다만 만물은 반드시 그 수명이 다하면 귀토(歸土)하게 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자세를 바르게 하고 허리를 펴려고 해도 아파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노환(老患)이라고 하니까 지팡이를 의지하거나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말고 안전한 공간에서 머무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요?”

오호! 늙어서 병들어 가는 자연의 섭리(攝理)로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무()의 뜻에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아닙니다. 그것조차도 무의 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생명 자체의 환경과 수명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일월성신(日月星辰)도 마찬가지라고 들었어요. 별도 수명이 다하면 길게 꼬리를 그으면서 사라지잖아요. 이렇게 별조차도 수명이 있는데 하물며 인간이나 이 땅의 만물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수명이 다하면 다시 땅으로 돌아가서 다른 생명으로 부활(復活)하는 것이고 다시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면 또 무토(戊土)의 보호를 받아서 중정(中正)의 이치대로 일생(一生)을 살아가게 되는 이치라고 생각했어요.”

일리가 있군. 자원의 설명은 모두 이치에 부합되는데 말을 듣다 보니 또 궁금한 것이 생겼네. 그렇게 만물의 수명을 관장하는 무토(戊土)의 수명은 없나? 세상의 만물이 저마다의 수명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무토도 또한 같지 않겠느냐는 말이지. 이점에 대해서는 어떤가?”

? 무토의 수명이 얼마나 되느냐는 말씀인가요?”

맞아, 수명이 있다면 얼마나 되는지가 궁금하고, 없다면 왜 유독 무토만 수명이 없는 것인지도 궁금하단 말이네. 허허허~!”

자원은 잠시 생각해 보고는 말했다.

태사님의 말씀은 잘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무토의 수명에 대해서는 자원도 알 수가 없네요. 아마도 영원(永遠)하다고 해야 하지 않겠나 싶기는 해요. 그래서 태허공(太虛空)이라고 하겠네요. 별조차도 수명이 다해서 사라지는 곳이 태허공인 것을 보면 무토의 수명은 아마도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은 꺼지고, 물은 마르고 산은 무너지고 나무도 흙으로 돌아가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무토이니 그래서 또 중정(中正)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건괘(乾卦)가 영원한 것처럼 무토(戊土)도 영원하다고 하는 이치에도 부합이 되는지가 궁금했는데 그 답으로 해결이 되었군. 하늘은 영원하기에 그 외의 만물은 하늘을 믿고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로군.”

아마도 그게 맞는 것이지 싶어요. 그러니까 일체만물(一切萬物)을 영원토록 지켜주고 감싸주고 관리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하겠어요.”

자원의 말을 들으면서 현담도 수긍이 된다는 듯이 말했다.

맞는 말이로군. 내 사유로도 그 정도의 해답이 타당하다고 여겨지네. 멋진 설명을 잘 들었네. 여기에 대해서 고월이 더 보탤 말이 있는지 궁금하군. 어디 한마디 해 보겠나?”

이번에는 자원의 설명을 듣고서 고월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이야기에 취해있던 고월이 일어나서 합장하고는 답했다.

실로 고월도 자원의 사유(思惟)가 이렇게 넓고도 깊은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천상(天上)의 태양과 달도 모두 무토의 영역에서 관리와 통제를 받는다는 기발한 생각은 또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할 따름입니다. ‘갑목참천(甲木參天)’을 생각할 때는 목의 기운이 하늘을 뚫는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기중차정(旣中且正)’을 알고 보니 그것조차도 무토(戊土)의 도움을 받아서 곧게 자란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모든 동물(動物) 중에서 오직 인간(人間)만 직립(直立)으로 보행(步行)하는데 그 이치도 무토(戊土)의 뜻을 가장 많이 부여받아서 그렇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모든 동물은 일시적으로 잠시 서 있을 수는 있어도 인간처럼 오랜 시간을 서서 살아갈 수는 없는데 그로 인해서 자연의 이치를 가장 깊고 넓게 깨달아서 만물의 영장(靈長)이 될 수가 있었고, 또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가? 고월도 자원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을 많이 했구나. 허허허~!”

뿐만 아닙니다. 태양인 병화(丙火)가 허공에서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조차도 무토가 없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은 단순하게 오행의 이치로만 대입해서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은 허공(虛空)에서 시작하고 또 허공에서 종료(終了)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여기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고월의 안목은 넓었다. 자원의 말을 들으면서도 앞에 나왔던 갑을병정(甲乙丙丁)에 대한 관계까지도 훑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고월의 말을 듣고서 현담이 말했다.

그렇군. 오늘의 공부는 여기에서 멈추고 각자 생각을 더 한 다음에 다음 구절을 살펴보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니 이쯤에서 마무리하세.”

제자들이 일어나서 현담을 전송했다. 그러자 우창이 고월을 보고 말했다.

나도 놀랐어. 생각의 깊이란 무한정(無限定)인가 싶군. 하하하~!”

이렇게 말하고는 자원을 바라보니 자원도 우창의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싸부! 그렇게 놀리실 것 없어요. 싸부가 늘 이야기하던 것인데 약간 새로운 관점으로 엮어봤을 따름이니까요. 실로 그러느라고 애썼다고 칭찬을 해 준다면 그건 감사히 받겠지만요. 호호호~!”

그래 잘했어. 하하하~!”

연일 새로운 이야기가 쏟아지는 오행원의 강당에는 여전히 열기가 넘쳐나고 그 열기에 감화(感化)된 제자들의 깨달음도 더욱 깊어갔다.